대학생 때까지는 서른 이후의 삶을 상상하지 않았다. 막연히 죽음을 그리며 꾸준히 유언장을 썼다.

남길 재산이라곤 쓰던 물품 정도였으므로, 유언장에는 ‘장례식에 누구를 초대해 달라’는 부탁과 ‘사후엔 화장해 유골을 뿌려달라’는 내용뿐이었다. 어영부영 30대가 되었다.

그사이 집이 네 번 바뀌었다. 수술을 세 번 했다. 1인 가구, 전월세, 대출, 이자, 보험료, 추적검사 따위의 단어와 익숙해졌다.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말하는 돌봄과 공동체, 제도 너머의 관계는 아직 내 삶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빈곤한 관계, 오르지 않는 소득, 약해진 몸과 함께 죽음은 20대 때의 막연한 상상이 아닌 구체적 걱정거리가 되었다.

자살이 아니라면 질병으로 죽겠지. 병원비는 보험으로 어느 정도 감당될 거야.

그런데 어느 정도란 얼만큼이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으면 언제쯤 발견될까.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며칠 안으로 아빠에게 연락이 갈 테다. 아빠가 지역을 넘어와 시신을 확인하고 나면 남은 가족이 장례를 치러주겠지.

만약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