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일주일 전, 아버지는 굳이 가족사진을 찍자고 했다. 마당에서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아버지의 2층 양옥집 앞에서 17명의 가족은 활짝 웃었다.
그 사진을 끝으로 17명이 모두 모이는 자리는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됐다. 3년 전 이맘때였다. 아버지 가시는 길에 우리는 그날의 사진을 떠올렸다.
활짝 웃는 아버지의 사진이 더 슬퍼 보였지만 병상에서 아버지가 그 사진을 좋아하셨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날이 자식들과의 마지막 추억이 될 거란 걸 아셨던 것일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나쁜 상황에 대한 불안을 감추고 싶었을까. 어쨌든 아버지 덕에 우린 가족사진을 남기게 됐다.
장례 동안은 밀려드는 손님을 맞느라 분주했다. 대부분 손님은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사진이 나랑 많이 닮았다며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연을 굳이 설명하는 내 모습에서 떠난 이에 대한 슬픔보다 남은 이의 생에서 더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았다. 부끄러웠다.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