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3년 넘게 도금 현장에서 일하며, 원발부위 미상암(C80.0)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사례를 바탕으로 암의 시작점을 모르더라도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부실이 재판에 어떻게 평가되었는지 정리합니다.고인은 1988년부터 2022년까지 약 34년간 도금강판 생산 현장에서 일했고, 2016년에는 석탑산업훈장을 받으며 성실한 노동자로 알려졌습니다.

작업 환경은 55~60도에 달하는 고온의 도금액이 끓는 밀폐 공간으로, 6가크롬·니켈화합물·황산 미스트 등 IARC 1군 발암물질에 지속 노출되었고, 보호구는 입사 7~8년이 지나서야 겨우 지급되었습니다. 2022년 진단에서 암은 뼈와 폐로 전이되었으나 원발부위를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고인은 202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은 산재를 신청했고 공단은 전문조사를 생략하며 원발부위 인과관계 증명이 어렵다며 역학조차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1차 심의에선 업무 관련성이 높다고 보았으나 2차 심의에선 폐암 근거가 미미하고 담도·소화기암 가능성을 들며 부지급 처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공단은 암의 시작점을 모른다는 이유로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유족에게 넘겼고, 이는 공단의 자료 부재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서울행정법원은 공단의 조사 의무를 강조하며 유족의 부담 분배를 바로잡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의학적 명백함이 전제되지 않아도 합리적 추론으로 충분하다는 점을 인정했고, 장기간 노출과 초기 환경의 악화 가능성, 사후 부검에서도 원발부위를 특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습니다.

더 중요한 대목은 입증책임의 공정한 배분입니다. 공단이 전문조사를 의무적으로 행사하지 않아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사실관계의 규명이 노동자 측의 불리로 귀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원발부위가 불분명하더라도 장기간의 발암물질 노출과 의학적 추정으로 산재를 인정할 수 있고, 공단의 조사 의무 미이행이 산재 여부 판단에서 형평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의학적으로 불분명한 질병일수록 공단이 보다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입증책임의 완화를 통해 노동자와 유족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실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원발부위를 모른다는 이유로 조사를 방치하고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관행에 제동을 건 이번 판결은 직업성 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적 절차의 개선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