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조금 잔치로 끝난 마을 공동체 사업의 문제를 이렇게 보았습니다. 의례적으로 과거의 따뜻한 전통적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주장에 대한 결론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에서 시작합니다.

옛 농촌 공동체는 삶의 거의 모든 국면을 함께 나누는 총체적 관계였고 모내기 철 두레로 논을 가꾸고, 결혼과 장례에 마을이 동원되며, 여가까지도 동네 사람들 외에는 함께 즐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끈끈한 정이 있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서 유지됐던 이례적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총체적 공동체를 도시에서 되살리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차례 실패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박원순 시기 추진된 마을만들기였는데, 주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문제를 해결하면 시가 지원하는 구조였지만 자생적 공동체가 뿌리내린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보조금이 참여의 동기를 대체해 자생적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가짜 공동체만 양산했다는 지적이 계속됩니다. 하향식 동원이던 새마을운동과 설계 철학은 다르지 않으나, 관의 자원이 빠지면 활동도 함께 소멸하는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도시에서 가능한 연결은 무엇일까요. 도시사회학자 클로드 피셔의 주장을 빌리면 도시는 인간관계를 파괴하기보다 특정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독자적 모임을 꾸릴 토대를 제공합니다.

모든 것을 함께하는 끈끈한 관계 대신 취미를 공유하는 느슨한 연대가 도시의 방식인 셈입니다. 아파트 단지 내 탁구 동호회, 산책로에서의 반려견 모임, 주민센터의 교양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연결은 신체 기능 유지에 필요한 사회적 연결로서는 충분하지만, 취미 공동체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위급한 순간에는 지리적 근접성이 다른 모든 관계의 조건을 압도합니다.

그래서 취미를 넘어 동네에 스며드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주민자치회 참여나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자원,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 같은 구체적 정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인식되는 활동이 연결을 만들어냅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정부가 올해 시행하겠다고 밝힌 사회적 고립 실태조사와 고독사 위기 대응시스템은 필요한 첫걸음이지만, 고립의 결과가 고독사로 나타나기 전에 노인들의 몸이 먼저 무너진다는 사실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사회적 연결망이 해체된 독거노인이 죽은 뒤에 보완하는 사후적 복지보다, 노인의 일상적 외출과 신체활동을 유도하는 물리적·사회적 인프라가 중요합니다. 도보 접근 가능한 소규모 공용공간, 주민센터 기반의 저강도 활동 프로그램, 단지 내 공유 동선의 설계 등 선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는 목가적 공동체에 대한 몽상이 아닌, 독거노인이 참여 가능한 느슨한 지역 연결망을 회복할 수 있는 정책이 보이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도시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결망을 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